서류가방 크기의 알루미늄 케이스 안에 PLC와 서보모터, 센서가 들어찬 소형 설비가 있다. 노트북 화면에는 같은 장비의 3차원 모델이 떠 있고, 화면에서 축을 움직이면 케이스 안 실물이 그대로 따라 움직인다. 지난 8월 6일 부산에 있는 내쇼날시스템 본사에서 열린 협약식에서, 제조AI 기업 리쉐니에(대표 이용관)와 용접·레이저 자동화 기업 내쇼날시스템(대표 김영호)이 'AI·디지털트윈 기반 스마트제조 교육사업'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 브랜드 '제조AI Academy'로 공업교육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시연된 장비는 CPS(사이버물리시스템) 교육용 키트 'FixMachine'이다. PLC 프로그래밍부터 데이터 수집, AI 학습, 디지털트윈 연동까지 스마트공장 구축 과정을 이 키트 하나로 실습할 수 있다. 현재 모션·컨베이어·회전기계 예지보전 3종이 학교와 연수원에 공급됐고, 가공기용 교육장비 키트도 개발 중이다. 웹 기반이라 강사와 학생이 떨어져 있어도 장비를 구동하고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식이 교육 현장에서 갖는 의미는 크다. 기존에는 학생들이 로봇 제어나 설비 데이터를 제대로 다뤄보려면 산업체를 직접 찾아가야 했고, 안전 문제와 일정 조율 때문에 견학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FixMachine은 실제 PLC와 자동화 장비, 센서를 교실로 가져온다. 학생들은 공장에 가지 않고도 로봇·모션 제어, AI 이상탐지 모델 학습, 제조데이터 수집·분석, 디지털트윈 모델링까지 실습할 수 있다.
특히 이 키트에는 교육용으로 만든 모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 공장에 납품되는 상용 플랫폼(엣지 데이터 수집 플랫폼 'DataStone', 클라우드 AI 분석 플랫폼 'MAIPOLE')이 그대로 탑재됐다. 리쉐니에 이용관 대표는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도입이 실패하는 이유는 솔루션 성능이 아니라 운영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며 "학교에서 익힌 도구가 취업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구조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리쉐니에는 2020년 12월 이후 정부 연구사업 16건을 수행하며 포장설비 베어링 파손 사전 감지, 이송로봇 모터 고장 조기 진단, PCB 생산라인과 SMT 실장라인 디지털트윈 구축 등의 실증 사례를 쌓았다. 지난해 독일 하노버 메세에서는 국내 가동 설비를 현지에서 실시간 재현하기도 했다. 2025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2026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기술경영인상을 받았고, 센서 데이터 관리 국제표준(ISO/WD 8000-260)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용접 분야는 내쇼날시스템이 맡는다. AI 용접 품질 판정, 로봇 용접 경로 실습, 용접 전원 데이터 분석을 위한 교육 기자재를 개발하고 실습 교육과정도 운영한다. 이 회사는 용접기와 산업용 레이저를 자체 생산해 32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전국 주요 대학과 30여 개 특성화고에 기술교육을 지원해 왔다. 김영호 내쇼날시스템 대표는 "용접은 공업계고 필수 과목이면서 숙련도 편차가 커 AI를 접목하면 교육 효과가 크다"며 "각자 잘하는 영역을 맡아 완결성 있는 라인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교육 설계에는 대학이 배경이 됐다. 이용관 대표는 한국공학대학교 산학협력중점교수로 재직하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 지원하는 지역지능화혁신인재양성사업(Grand-ICT연구센터) 세부과제를 맡고 있다. 재직자를 산업 AI 석사로 양성하는 과정에서 다듬은 커리큘럼이 이번 '제조AI Academy'에 적용됐다. 리쉐니에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연수원에서 재직자 대상 예지보전 실습 특강을 운영한 바 있다.
두 회사의 목표는 'Physical AI'이다. 데이터로 학습한 지능이 로봇과 설비라는 물리적 실체를 통해 현실에서 판단하고 움직이는 단계를 말한다. 데이터 수집(제조데이터), AI 판단, 가상 검증(디지털트윈), 실제 장비 구동(로봇) 순서가 교육 과정에 담겼다. 교실에서 이 흐름을 경험한 학생은 현장에서 같은 구조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올 하반기 두 회사는 용접 분야 기자재와 가공기 분야 실습 키트 시제품 개발에 착수하고, 내년 시범 도입을 거쳐 공업계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폴리텍대학으로 보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교사 연수와 재직자 교육까지 연결하면 학생-교사-재직자로 이어지는 인재 사슬이 완성된다는 구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