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은 작업실 한가운데 서서 정면을 본다. 검은 옷과 긴 머리, 뒤편에는 회색 대형 화폭과 돌덩이 같은 형태들이 놓여 있다. 화폭들은 색이 거의 빠져 있어 벽과 잘 구분되지 않고, 앞쪽 탁자 위 청록색 면만 유일하게 색을 갖는다. 초상 자체가 이미 어두운 방과 한 점의 빛이라는 구성이다.
한 점은 그 구성을 전시실로 확장한다. 검은 방의 두 벽에 부조가 걸리고, 왼쪽 한 점만 붉게 발광한다. 발광하는 면에는 글자 같은 덩어리가 떠 있지만 읽히지는 않는다. 오른쪽 벽의 구름 같은 띠는 빛을 받지 못해 실루엣으로만 남는다.
가운데 낮은 단 위의 붉은 면이 방의 무게중심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벽에서 바닥으로, 밝은 데서 어두운 데로 시선이 한 바퀴 돈다. 조명이 닿지 않은 벽면은 아예 화면에서 사라지고, 방의 크기는 넉넉한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넷뿐이다.
다른 한 점은 같은 어둠 안에 상자를 하나 놓는다. 유리 안에 굽은 나무와 바위, 얼어붙은 파도 같은 청록 유리판이 함께 서 있고, 아래에서 올린 조명이 뿌리 쪽만 밝힌다. 유리판이 얼음처럼 보이는 것은 뒤에서 오는 빛이 없기 때문이다. 상자 밖의 방은 전혀 밝히지 않아, 안쪽 풍경만 홀로 떠 있다.
앞의 방이 벽을 보게 했다면 이 상자는 안을 들여다보게 한다. 두 경우 모두 형태를 정하는 것은 재료가 아니라 어디를 밝히고 어디를 남길지에 대한 결정이다. 어둠은 배경이 아니라 재료로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