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모는 탁자에 손을 얹은 채 정면을 본다. 뒤로는 나무 창틀이 격자를 이루고, 왼쪽 벽의 꽃 그림은 흐려져 색만 남았다. 손등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어깨도 내려가 있다. 붓도 먹도 화면에 없다. 쓰기 직전이거나 막 끝낸 상태의, 정지된 자세다.
두루마리에서 종이는 이미 낡아 있다. 펼친 면 위에 잔 글씨들이 세로로 내려오고, 오른쪽 아래를 큰 획 하나가 차지한다. 잔 글씨는 크기가 고르고 간격이 일정해서 회색 면처럼 읽히고, 큰 획 하나만 그 규칙 밖으로 나간다.
이 두루마리는 실내에 놓이지 않았다. 마른 나무 그루터기 위에 펼쳐지고 검은 가지가 위아래로 지나간다. 종이의 가장자리는 찢어진 채로 두었고, 나뭇결과 종이의 결이 같은 방향으로 놓여 어디까지가 종이인지 잠깐 헷갈린다. 글씨가 책상이 아니라 바깥 공기 속에 놓여, 종이의 낡음이 더 분명해진다.
액자 쪽은 그 한 획을 여러 폭으로 나눈다. 세로 글씨 폭들이 나란히 걸리고, 가운데 폭에만 주황빛 원이 번져 있다. 붉은 획과 검은 획이 번갈아 놓여 시선이 좌우로 흔들리고, 폭마다 여백의 너비가 달라 나란한데도 리듬이 균등하지 않다.
앞의 두루마리가 한 획의 무게로 버틴다면, 이쪽은 획들 사이의 간격이 일한다. 먹의 농담은 붓이 종이에 머문 시간을 그대로 기록한다. 진한 곳은 오래 머문 자리이고, 갈라진 곳은 빠르게 지나간 자리다. 두 점 모두 결국 시간을 기록한 화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