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 속 그는 작업대에 팔을 얹고 앉아 있다. 뒤 벽에는 흑백의 큰 그림이 걸렸고 오른쪽에는 작업등이 목을 숙이고 있다. 검은 스웨터, 흐트러진 머리, 카메라를 향한 조용한 시선. 화면 밖의 사물들이 인물만큼 또렷하게 찍혀 있다는 점이 이 사진의 성격을 정한다.
스무 점의 작업도 같은 원칙을 따른다. 어느 것도 화면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쇄된 판이 대리석이나 나무 상판 위에 비스듬히 세워지고, 옆에는 도자기와 마른 이삭이 놓이고, 벽에는 창살 그림자가 드리운다. 상품 페이지를 만드는 일을 사진 한 장을 차리는 일로 바꿔 놓았다.
배치의 규칙은 첫 화면에서 이미 선언된다. 큰 이미지 하나와 작은 이미지 여럿. 이 구조가 스무 점 내내 유지되고, 달라지는 것은 큰 이미지에 무엇을 놓느냐뿐이다. 아치를 쌓은 회색 구조물이 놓이기도 하고, 가로줄로 짜인 표면이나 절반쯤 겹친 두 개의 원이 놓이기도 한다.
색을 쓰는 방식은 인색할 정도로 절제돼 있다. 바탕은 거의 미색과 회색이고, 각 화면에 주황 계열 하나가 점처럼 들어온다. 가로줄 위의 주황 사각형, 남색 표지의 주홍 원, 찢어 붙인 종이 조각. 그 한 점이 시선을 붙들기 때문에 나머지 넓은 면이 조용히 버틸 수 있다.
마지막 화면에서 그 주황이 종이 밖으로 걸어 나온다. 흰 판 위의 잎사귀와 옆에 꽂힌 금빛 잎이 같은 색조로 이어지면서, 인쇄물과 그것이 놓인 방이 구분되지 않는다. 팔려는 것과 그것이 놓일 자리를 함께 설계한다는 태도가, 요란한 설명 없이 이 한 장면으로 정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