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 왼쪽에 있다. 다이앤 오코로는 그쪽으로 몸을 조금 틀고 정면을 본다. 흰 곱슬머리와 회색 카디건, 배경은 거의 어둡다. 표정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데도 시선이 흔들리지 않는다. 배경을 거의 지운 사진이라 얼굴과 손의 나이만 남는다.
흙을 다룬 쪽에서 재료는 부드럽고, 그 부드러움이 무너진 자리를 만든다. 머리와 팔이 없는 몸통은 가슴 한복판이 갈라져 안쪽 어둠을 드러낸다. 표면에는 손가락으로 눌러 다진 자국이 남아 있고, 어깨 부분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처럼 거칠다. 옆에서 든 빛이 그 구멍의 가장자리를 붙잡아 더 깊게 만든다.
돌을 다룬 쪽에서는 재료가 바뀌고 태도가 남는다. 금이 간 돌덩이가 타원으로 파낸 돌 그릇에 얹히고, 그 전부를 나무 사각 틀이 감싼다. 둥근 것과 각진 것, 갈라진 것과 감싸는 것이 한 화면에 함께 있다. 돌은 흙보다 단단한데, 갈라진 방식은 오히려 더 깊다.
두 점 모두 틀 안에 들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코로는 조각을 좌대 위에 세우는 대신 상자와 프레임 안에 넣었다. 사방에서 돌아보게 하는 대신 한 방향에서만 보게 한다. 보는 사람의 자리를 미리 정해 둔 셈이고, 그래서 조각은 한 장의 장면처럼 읽힌다.
깨진 자리를 메우지 않은 것이 두 점의 공통점이다. 완결된 형태를 향해 가다 멈춘 것이 아니라, 갈라진 상태 자체를 형태로 인정한 쪽에 가깝다. 오래 견딘 것들이 갖는 표면이 거기 그대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