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 속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시선을 옆으로 두고 있다. 창에서 들어온 빛이 얼굴의 한쪽만 밝히고 나머지는 어둠에 남는다. 검은 옷과 어두운 실내가 붙어 있어 밝은 부분의 면적이 아주 적다. 밝고 어두운 것의 비율로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 사진과 작품에서 똑같이 쓰인다.
스무 점의 작업에는 선이 거의 없다. 대신 점이 있다. 흰 입자들이 한 점을 중심으로 감겨 들어가 소용돌이를 이루고, 미세한 점들이 아래쪽에 모였다가 위로 갈수록 성글어져 무게를 만든다. 형상을 그리는 대신 밀도를 조절한다.
거리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는 점이 이 방식의 핵심이다. 벽 크기의 격자 앞에 서면 작은 사각형 수천 개만 보이고, 몇 걸음 물러서면 파도가 나타난다. 남색 화면의 흰 고리도 멀리서는 매끈한 선이지만 가까이 가면 점의 행렬이다. 관객의 위치가 이미지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전시의 짜임도 일정하다. 큰 작품 옆에는 늘 작은 화면 하나가 놓인다. 소용돌이 옆에는 그 일부를 확대한 화면이, 점들이 가라앉은 액자 옆에는 같은 점이 세로로 흘러내리는 화면이 선다. 큰 것과 작은 것, 멈춘 것과 켜진 것이 같은 규칙을 두 번 말한다.
색은 마지막에야 들어온다. 검은 바탕에 실처럼 가는 선으로 피운 분홍 꽃에서 한 번, 그리고 밝은 거실 벽에 걸린 층층의 결에서 다시 한 번. 전시장의 조도를 벗어나 생활의 빛 아래 놓인 그 마지막 화면이, 이 작업이 결국 어디에 걸리기를 바라는지 조용히 알려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