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은 콘크리트 기둥이 그대로 드러난 넓은 작업실에 서 있다. 검은 재킷 아래로 한쪽 어깨만 앞으로 나와 있고 시선은 카메라를 비껴간다. 등 뒤 벽 앞에는 검은 선이 어지럽게 얽힌 구조물이 놓였고, 오른쪽 큰 창에서 흐린 빛이 들어와 얼굴의 절반만 밝힌다. 배경이 정돈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눈에 띈다. 완성된 것 옆이 아니라 만드는 중인 것 옆에 선 사람이다.
스무 점을 훑으면 재료의 목록이 먼저 떠오른다. 옅은 초록 유리 막대, 고운 철망, 검은 자갈, 천으로 감싼 둥근 덩어리, 반투명한 색 패널, 천장에서 내려온 가는 줄. 성질이 전혀 다른 것들인데 다루는 방식은 하나다. 작은 단위를 정해 놓고 그것을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해 큰 덩어리를 만든다. 형태는 손으로 조각한 것이 아니라 수량이 쌓여서 생긴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 화면의 절반은 늘 바닥이 맡는다. 매끈하게 간 콘크리트 위에 색이 눕고 그림자가 흘러내리고 매달린 것의 그림이 한 번 더 나타난다. 공중에 뜬 유리 큐브 아래에서는 노랑과 보라가 실체보다 넓게 번지고, 철망 구름 아래에는 물결 모양 얼룩이 깔린다. 위쪽만 보면 작품이 절반만 보인다.
색은 재료가 정한다. 유리에서는 옅은 청록이, 자갈에서는 무채색이, 필름에서는 겹칠 때만 생기는 노랑과 자홍이 나온다. 안료를 얹어 만든 색이 아니라 빛이 재료를 통과하거나 튕겨 나오면서 남은 색이다. 그만큼 조명의 각도 하나로 전체가 달라질 여지가 크다.
남는 것은 크기의 감각이다. 유리 파도 옆에 선 사람 하나, 천장 아래로 몸을 낮춘 철망의 높이, 발을 딛기 망설이게 되는 자갈밭의 폭. 작품을 정면에서 마주 보게 하는 대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고, 걸어 들어간 사람의 몸으로 규모를 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