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후드에 검은 티셔츠, 짧게 자른 머리. 청한 린은 큰 모니터를 등지고 앉아 카메라를 본다. 뒤편 화면에는 색색의 카드가 격자로 깔려 있고 왼쪽 벽에는 액자가 걸렸다. 표정에 별다른 신호가 없어서 오히려 뒤쪽 화면의 색이 더 눈에 들어온다. 그가 만든 앱 화면에서도 사람보다 빛이 먼저 보인다.
그의 이미지에는 기기가 혼자 놓이는 법이 거의 없다. 두 대, 세 대가 나란히 혹은 겹쳐 놓이고, 카메라는 늘 위에서 내려다본다. 화면마다 앱의 다른 지점이 열려 있어 하나를 보면 다음이 짐작된다. 목록, 상세, 설정. 한 장면이 아니라 흐름을 보여주려는 배치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낱장이면서도 이어 읽힌다.
화면 자체는 놀랄 만큼 어둡다. 검정에 가까운 회색 위에 카드가 겨우 구분될 정도의 밝기 차이로만 얹힌다. 대신 색은 점으로 온다. 주황 원, 분홍 원, 보라 원. 안개 속 등불처럼 번지는 이 작은 발광체들이 화면에서 유일하게 위치를 알려준다. 글자를 읽기 전에 손이 먼저 그 점들을 향하게 되는 구조다.
배경도 이 어둠을 거든다. 바닥은 언제나 무광 회색이고 그림자는 아주 부드럽다. 기기의 테두리와 바닥의 경계가 흐려서 화면들이 표면 위에 얹혔다기보다 그 안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색이 화면 밖으로 새지 않기 때문에 발광은 전부 안쪽에 갇힌다.
그러다 한 화면에서 규칙이 무너진다. 분홍 꽃 한 송이가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는 장면이다. 스무 점을 통틀어 유일하게 색이 절제를 벗어난 자리이고, 앞뒤의 어둠 때문에 그 한 번이 오래 남는다. 절제를 지키는 일보다 어디서 한 번 어길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