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은 작업 중간에 멈춰 선 얼굴이다. 둥근 안경 너머로 시선이 정면에 오래 머물고, 상체는 책상 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다. 검은 스웨트셔츠와 어두운 실내가 거의 한 덩어리로 붙어 있어서 얼굴과 손만 밝게 남는다. 뒤편 벽에는 흑백의 큰 형상이 걸려 있다. 화면을 다루는 사람의 초상인데 화면이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작품에서는 반대다. 스무 점 전부가 휴대폰 화면이다. 다만 어느 것도 손에 들려 있지 않다. 콘크리트 바닥에 눕고, 어긋난 격자로 늘어서고, 액자에 갇히고, 벽에 원을 그리고, 끝내는 실에 매달려 공중에서 흔들린다. 쥐고 쓰는 물건이라는 전제를 걷어 내자 화면은 곧바로 사각형 하나로 돌아간다.
그 사각형 안에서 되풀이되는 것은 원이다. 어두운 바탕 위에 뜬 흰 원, 반쯤 가려진 원, 주황색 버튼의 작은 원. 서른 대가 넘는 화면을 한 액자에 모아 놓으면 이 원들이 밝기 순으로 늘어서면서 달의 위상표처럼 읽힌다. 벽에 걸린 화면들이 다시 거대한 원을 이루는 작업에서는 그 도형이 배열 자체의 형태가 된다.
색의 폭도 좁게 유지된다. 검정과 짙은 회색이 바닥을 깔고, 베이지와 모래색이 중간을 채우고, 주황이 점처럼 찍힌다. 숲과 단풍을 담은 격자만이 예외적으로 계절의 색을 들여오는데, 그마저 같은 크기의 사각형에 나뉘어 담기면서 풍경이 아니라 견본처럼 정돈된다.
마지막 모빌 앞에서 이 작업이 무엇을 겨눴는지가 분명해진다. 화면과 타원과 반원이 같은 막대에 매달려 서로의 무게를 받아 낸다. 인터페이스를 설계한다는 것이 결국 무엇을 얼마나 놓을지 저울질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흔들리는 균형 하나가 말없이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