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에서 그는 자신이 만든 것과 나란히 앉아 있다. 왼쪽 작업대 위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회색 덩어리가 놓였고 뒤편 벽에는 스케치 몇 장이 핀으로 고정돼 있다. 검은 스웨터 차림의 상체는 조각 쪽으로 조금 기울었는데 시선만 정면으로 돌아왔다. 창에서 든 빛이 구멍마다 그늘을 만들어, 사람보다 사물의 표면이 더 자세히 읽힌다.
작품 쪽은 균일하다. 스무 점 모두 흰 좌대 위에 하나씩 올라가 회색 배경 앞에서 같은 조명을 받는다. 조건을 고정해 두었기 때문에 비교가 쉬워진다. 달라지는 것은 형태를 만든 규칙 하나뿐이다.
그 규칙은 표면에 숨지 않는다. 항아리는 벽면이 불규칙한 구멍으로 뚫려 뼈대만 남았고, 두상은 뒤쪽부터 여러 겹의 껍질로 벌어진다. 또 다른 머리는 정육면체를 층층이 어긋나게 쌓아 만들었는데, 얼굴 쪽만 매끈하고 뒤로 갈수록 블록이 굵어진다. 세밀함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지가 눈에 보인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도 같은 논리를 따른다. 반투명한 다면체에서는 색이 표면이 아니라 두께 속에 들어 있고, 그래서 뚫린 구멍이 색의 깊이를 드러내는 단면이 된다. 투명한 덩어리는 안쪽에 박힌 불빛을 표면의 결로 굴절시켜 스스로 밝아진다. 겉을 칠하는 대신 속을 바꾼다.
스무 점을 이어 보면 하나의 질문이 반복된다. 형태를 어디까지 덜어 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가. 구멍이 커진 항아리도, 블록이 굵어진 머리도 여전히 항아리와 머리로 읽힌다.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멈추는 감각이 이 작업의 중심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