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은 인물을 다 보여 주지 않는다. 역광이 드는 책상 앞에서 어깨 너머로 고개만 돌렸고, 창에서 들어온 빛이 머리카락의 윤곽만 밝힌 채 얼굴의 절반을 그늘에 남긴다. 뒤편에는 장비와 화면의 형체가 흐릿하게 걸려 있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한 장면에 같이 있는 이 구성은 작품에서 그대로 되풀이된다.
전시장 벽에는 늘 두 개가 함께 걸린다. 하나는 액자에 든 인쇄물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빛나는 패널이다. 격자 위에 그려진 가는 선들 옆에 같은 구조가 푸른 점과 선으로 켜져 있고, 점의 밀도만으로 세운 도시 옆에는 같은 실루엣이 빛으로 번진다. 짝을 이루는 두 화면은 같은 규칙에서 나왔지만 밝기를 얻는 방식이 다르다.
그 차이가 이 작업의 내용이다. 인쇄된 쪽은 윤곽이 또렷하고 멈춰 있다. 켜진 쪽은 경계가 풀리고 번지며, 어두운 방에서 스스로 빛의 양을 정한다. 두 개를 나란히 두면 관객의 눈은 자연히 왕복하게 되고, 그 왕복 속에서 어느 쪽이 원본인지 묻는 일이 흐려진다.
제작 과정도 감추지 않는다. 완성된 큰 화면 아래 유리 진열장을 놓고 같은 도형의 작은 시안들을 순서대로 눕혀 두는 방식이 그렇다. 결과만 걸지 않고 결과에 이르는 계단을 같은 높이에 둔다. 세로로 골이 진 유리판을 세워 그 뒤의 주황빛을 굴절시키는 작업에서는 재료 자체가 한 번 더 계산을 수행한다.
색은 대체로 절제돼 있다. 남색과 회색, 종이의 미색이 대부분이고 주황과 분홍이 드물게 들어온다. 그래서 실로 그린 듯한 분홍 꽃이 걸린 벽 앞에 서면 색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규칙이 만든 형태가 어느 순간 감각으로 넘어가는 지점을, 이 전시장은 조용한 벽 여러 개를 지나온 뒤에야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