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연은 카메라를 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붓을 든 손끝에 시선이 가 있고, 검은 마 옷의 소매가 종이 위로 늘어졌다. 뒤 벽에는 커다란 수묵 산수가 걸려 있는데 초점이 맞지 않아 안개처럼 보인다. 그리는 중인 사람을 그리는 중인 상태로 찍은 사진이다.
산수 한 점은 그 안개를 화면 안으로 옮겨 놓는다. 능선은 뒤로 갈수록 옅어지고, 앞쪽 소나무만 짙은 먹으로 서 있다. 거리를 만드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농담이다. 나무의 종류나 계절을 알려 주는 세부는 거의 없고, 멀수록 흐리다는 규칙 하나로 화면 전체가 정리된다.
붉은색은 아주 조금만 쓴다. 화면 좌우 끝의 단풍 두 그루가 전부인데, 그 두 점이 회색 일색에 눈을 붙들어 둔다. 액자 테두리까지 바위처럼 거칠게 칠해져 있어, 그림과 벽 사이에 얇은 지층이 하나 더 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도 쪽은 대상이 바뀌어도 방식이 같다. 물결 하나가 왼쪽에서 솟아 오른쪽으로 무너지고, 오른쪽 위는 손대지 않은 채 남는다. 비워 둔 넓이가 파도의 높이를 대신 말한다. 종이의 결이 물결의 방향을 따라 드러나고, 아래쪽 붉은 인장 하나가 그 균형을 바닥에 고정한다.
두 화면 모두 그린 부분보다 그리지 않은 부분이 넓다. 붓이 멈춘 자리마다 먹이 조금씩 고여 있고, 그 고임이 획의 끝을 정한다. 완성된 그림이라기보다 붓이 지나간 시간의 기록에 가깝다. 남는 것은 농담의 층과, 그 사이를 지나간 붓의 방향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