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 속 그는 완성된 작품 옆에 서 있지 않다. 책상 위 흰 종이 구조물로 몸을 깊이 숙였고, 손끝은 아직 접힌 면 위에 있다. 창에서 들어온 빛이 종이의 톱니 같은 단면을 하나하나 세우고, 검은 셔츠와 묶어 올린 머리는 그 밝기 뒤로 물러난다.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지 않는다. 팝업 아트라는 분야를 소개하기에 이보다 정확한 장면은 드물다.
스무 점의 작업은 그 종이의 논리를 도시 크기로 옮긴 결과다. 얇은 판을 수백 겹 포개 터널을 만들고, 흰 벽 한가운데를 구름 모양으로 도려내 안쪽에 방 하나를 앉히고, 유리판을 격자에 끼워 문을 세운다. 어느 것도 벽으로 막지 않는다. 전부 통과하거나 들여다보게 되어 있다.
재료는 매번 바뀌는데 하는 일은 같다. 빛을 걸러 색을 옮기는 일이다. 색유리 문틀 아래 바닥에는 유리와 똑같은 색의 사각형이 다시 그려지고, 반투명한 정육면체는 안쪽의 주황을 표면 전체로 번지게 한다. 붉은 원판으로 지은 지붕은 하늘을 조각내면서 그 아래 서 있는 사람 위로 붉은 반사광을 떨어뜨린다. 색이 표면에 칠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건너오는 중이다.
크기를 알려 주는 방식도 일정하다. 사람 하나가 늘 작게 들어가 있거나, 뒤편에 도시의 건물이 걸린다. 이 장치 덕분에 구조물은 조형물이 아니라 임시로 생긴 장소처럼 읽힌다. 팝업이라는 말이 종이의 동작이자 도시의 일정이라는 이중의 뜻을 여기서 동시에 쓴다.
남는 인상은 화려함이 아니라 가벼움이다. 수십 장의 금속판으로 만든 아치조차 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색은 무게를 갖지 않은 채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접으면 사라질 구조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 편이 오히려 이 작업들을 오래 서 있게 한다.







